알파고가 돌아왔다. 그것도 더욱 강해져서.인공지능과 바둑 양쪽 모두에 기초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행운을 가진 나는 이 충격을 좀더 생생하게 누리고 있다. 비단 정상급 프로를 상대로 60연승이라는 표면적인 숫자를 넘어서,알파고의 수법들은 너무나 놀랍고 깊이가 깊어서인간으로써는 대적하는것은 고사하고 이해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파고는 비록 인공지능도 아닌 소규모 신경망에 불과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순한 신경망조차도 인간이 이해할수 없는 수준까지 진화해 갈수 있다는 점에서더욱더 두려움과 충격이 큰 것이다. 과연 미래의 인간이 알파고에게 한판이라도 이기는게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침팬지에게 바둑을 몇년이나 가르치면 인간을 이길수 있을까요?" 와 같은 현명한 질문을 되..
쾌락은 허상에 불과하고 고통만이 실존한다. 고통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의 참다운 본질을 이해할수 있으며, 참다운 마음의 평화에 도달할수 있다.더위와 추위, 굶주림, 피로, 분노, 좌절, 그밖의 수많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들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 우리가 바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상상할수 있는 극한의 쾌락이라 하더라도 기껏해야 술, 도박, 이성, 그리고 과시를 통한 우월감 정도이며, 이런것을 절제하는것은 어렵지 않다.하지만 아주 간단한 고문조차도 견뎌낼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쾌락은 쉽게 싫증나지만 고통은 익숙해 지는 법이 없다.쾌락의 끝에는 언제나 소진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이라면 쾌락과 방종보다는 인내와 극기를 소중히 여기며, 현명한 사람이라면 언제나 쾌..
50년을 뛰어넘는 사랑은 진짜 사랑일까. 영국의 70대 변호사가 25세의 여자친구와 열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런던에 사는 변호사 앤서니 얼리지(76)는 지난 9월 법률 보조원이던 헤더 록우드(25)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앤서니는 판사인 여자친구 콘스탄스 브리스코(55)가 있었지만, 결별을 선언하고 록우드를 택했다. 전 여자친구의 집에서 나온 얼리지는 록우드의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록우드의 어머니는 “딸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며 두 사람의 사이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 충격을 받은 브리스코는 “얼리지는 늦바람을 피우기에도 너무 나이가 많다”며 “그 여자가 뭘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둘 다 잘해 보길 바란다”고 분한 마음을 드러냈다.http://www.segye.com..
993차례의 외침...사실일까?http://www.ytn.co.kr/news/clmn_view.php?idx=292&s_mcd=0612&s_hcd=01 마침 나와 비슷한 논조를 지닌 글이 있었다. 한국을 강대국 틈에 끼어서 외침을 많이 받은 나라라고 하는데내가 한국인의 특성을 관찰해본 결과와, 역사서의 기록을 보면 이것은 사실과 다른것 같다. 한국인들은 안전불감증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안전의식이나 안보의식이 지극히 희박한데이는 난리가 많이 있었던 나라에서라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기술적으로는 한국은 현재 60년째 '전쟁중'이지만아무도 지금이 전쟁중이라거나 외침을 받고있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실제적인 '외침' 이라고 인식하기 위해서는국경에서의 분쟁이 아닌 실제적으로 영토 깊숙히 적들이 내침..
Life is long, money is short.니가 아무리 늙었고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해도,그돈을 다 쓰고 죽을만큼의 시간은 충분히 있게 마련이다.그러니 걱정말고 조빠지게 돈이나 벌라는 말씀 ㅋㅋ... 삼십대도 슬슬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문득 이십대 초반을 뒤돌아 보니이십대 시절 십대 초반을 돌아보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격차가 느껴진다. 아마도 오십대쯤 되어서 삼심대 시절을 돌아보면또 그보다도 훨씬 큰 격차가 있으리라. 이십대의 나를 돌아봐도 우수운건 많긴 하지만오늘날에도 이십대들이 사못 비장한 표정으로 정의를 외치는걸 보면'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하던 초등학교 웅변대회를 보는 기분이다. 내 자식은 웅변대회 같은건 절대 내보내지 말아야지...
인간과 인생에 대해서 뭔가 거창한걸 기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인간이란건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인간이란것의 실체를 한꺼풀만 벗겨보면고통과 쾌락이라는 두가지 욕구에 따라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유기물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사실에 (혹은 의견에) 대해서 어떠한 유감도 없다.모든 물질이 원자와 전자로 이루어져있다는걸 알았다고 해서 세상이 흑백의 단순한 세상이 아닌것처럼인간이 단순한 존재라고 해서 인생의 다채로움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는것은 아니다.
남자에게 평생 한여자로 만족하라고 하는것은여자에게 평생 한가지 옷만 입고 한가지 음식만 먹으라고 하는것 만큼 가혹한 일이다. 물론 지극히 남성성이 강한 나로서는왜 평생 한가지 옷만 입고 한가지 음식만 먹는게 고통스러운지 도무지 이해할수 없지만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왜 남자보고 한 여자에 만족하라는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하기 어려울것 같다. 어딘가의 속담으로 남자의 성욕은 여자의 식욕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이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적절한 비유다.
내게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전의 다른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고마움을 표한다. 나는 지금 사용하는 언어나 수학을 고안하지 않았다. 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도 거의 없으며 내가 입는 옷도 직접 만들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우리가 올라설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 준 사람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이것의 본질은 우리가 각자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밥 딜런의 노래를 쓰거나 톰 스토파드의 희곡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못난 사람들도 살아남을수가 있다면 사회가 발전할수록 세상엔 못난 사람들로 가득찰거고 인간은 점점 퇴보하는게 아닐까? 만약 인간들의 단점만을 바라본다면 저말이 맞을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 하고 단점을 보살펴 준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를 만날수 있다. 문명이 발전하지 못했다면 스티비 원더의 음악도 듣지 못했을 것이고 스티븐 호킹의 놀라운 지혜도 알아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문명이라는 것은 스티비 원더를 봉사라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음악가로 존중해주고 스티븐 호킹을 병신이라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천재 물리학자로 존경해주는 것이다. 나 자신 조차도 수많은 단점들 개중엔 치명적인 단점들도 많이 가지고 ..
주로 못사는 사람일수록 '왜사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왜사냐'라는 말은 별로 생산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을 위축시키는 전형적인 나쁜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왜사냐'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어떻게 살것인가', '무엇을 남길것인가' 와 같은 질문을 한다. 이러한 말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활력을 넘치게 하는 말이다. 패배자가 되어 사라져갈 것인지 승리자가 되어 번성할 것인지는 모두 이 한마디의 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